🌿 살아줘서 고마운 나무들, 목일신 근린공원
지금은 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다 좋다. 왜냐하면 나무마다 자신의 신록을 마음껏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엄마 젖을 먹은 신생아들의 터질 것 같이 살이 오른 볼살 같다. 내가 일하는 일터 근처에는 인근 주민들이 자주 찾는 작은 근린공원이 있다. 이름은 목일신 근린공원이다. 원래 산이었던 그곳은 오랜 나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수령이 긴 나무들도 많다. 그래서 어떤 나무들은 높이가 20m를 넘어가기도 한다. 둘레길도 조성되어 있어 산책이나 사색을 즐기기에 딱 좋다. 나도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날 때면 이 둘레길을 몇 바퀴 돈다. 누군가가 좋은 글귀와 함께 이 둘레길이 410m라 표시를 해 놓았다.
4월 초순, 봄기운이 무르익으려고 할 즈음 그 공원을 찾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공원 아래 쪽에 난 길을 걸었다. 그 둘레길 코스에 출입을 금지하는 줄이 쳐져 있었다.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산비탈 쪽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여전히 새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연둣빛 잎으로 봄을 노래하고 있었지만, 그 나무들은 차갑게 멈춰 있었다. 공원 측은 혹시 이 나무들이 죽어 사고가 날까 염려해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나는 그 나무들을 바라보며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아, 겨울을 이겨내지 못한 걸까. 그렇게 조용히 그 자리에서 서 있던 나무들이, 마치 인생의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로부터 몇 주가 흐른 어느 따뜻한 5월의 날, 다시 그 공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그 나무들은 가지 끝에서 조심스럽게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들이 살아 있었다. 비록 다른 나무들처럼 빛을 풍성하게 내고 신록을 뽐내고 있지는 못했지만 살아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살아 있어. 늦었지만, 살아내고 있어.”
나는 나무가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그날, 조심스레 새싹을 피워낸 그 나무들 앞에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포기하지 않아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살아내는 능력
얼핏 보기에 끝난 줄 알았던 생명이 사실은 땅속 깊은 곳에서 버티고 있었다. 생명의 본질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내는 데 있다. 믿음이란 바로 이 살아내는 능력을 붙드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이 마음에 박힌 진리는 이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것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절망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는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반드시 존재한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에는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그 뿌리 속에서 다시 움이 돋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무덤을 뚫고 부활하셨다. 그분 안에 있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활의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다. 겨울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 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포기하지 않아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 묵상 말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린도후서 4:8–9)
바울은 고난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고백한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쓰러지지 않고, 답답한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거꾸러져도 그것이 끝은 아니다. 믿음의 사람은 넘어져도 망하지 않는다. 믿음은 고난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난을 견디고 끝까지 살아내는 능력이다.
🪻 묵상 적용
지금 내 삶에 “죽은 것처럼 느껴지는 영역”은 무엇인가?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새 생명을 일으키실 수 있음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절망 속에서도 붙들고 있는가?
끝까지 살아내는 믿음을 오늘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 마무리 묵상 문장
죽었다고 여겼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생명을 피워내신다.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믿음은 포기의 끝에서도 희망을 붙드는 것이다. 오늘도 살아내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