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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콘크리트 옹벽에 매달린 새를 보며 느낀 묵상글

by 일상의 묵상 2025. 4. 30.

🏡 콘크리트 옹벽에 매달린 새가 가르쳐준 것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지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낡은 느낌은 거의 없다. 20년 전, 낙후되었던 지역 전체를 아파트 단지들로 재개발하면서 이 일대가 모두 아파트들로 채워졌다. 오천 세대가 넘는 큰 단지라 주변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있다.

이곳은 원래 약간 높이가 있던 산등성이였기에, 중간에 도로를 내고 학교 운동장을 조성하면서 길게 콘크리트 옹벽이 만들어졌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이 옹벽 옆 맞은편 인도를 따라 걸어서 일터로 출퇴근한다. 봄이 되며 조경수로 심은 나무들은 더욱 울창해졌고, 새들의 지저귐도 풍성해졌다. 그런데 어제 아침, 평소와는 다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옹벽에 매달린 새
옹벽에 매달린 새

🐦 수직의 벽에 매달린 작은 생명

한 마리 새가 콘크리트 옹벽을 향해 날아가더니, 수직의 벽에 몸을 붙인 채 매달렸다. 곧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반복했다. 처음엔 차 소리에 놀라 도망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새가 머물던 자리에서는 아주 미세하게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 속에도 새는 있었지만, 이 새는 거친 벽에 의지해 물을 얻고 있었다. 아무리 날 수 있는 존재라 해도, 생명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음에도, 생명수 앞에서는 겸손히 머물러야 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그 벽은 위험하고 불편했지만, 그곳에야말로 진짜 생명이 있었다.

💧 겉모습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것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파트가 크고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도, 겉으로 보이는 풍성함이 삶의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영혼이 목마르고 공허하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어도 진정한 기쁨과 평안은 누릴 수 없다. 사람들은 외형에 집중한다. 좋은 집, 좋은 직장, 좋은 인간관계를 갖추려 애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무리 가득해도, 내면이 메마르면 결국 공허함이 찾아온다. 겉모습을 채우는 것만으로는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수다.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안에 흐르는 생명의 물줄기가 없으면 결국 시들어버린다.

새가 울창한 나무를 놔두고 거친 콘크리트 벽으로 날아갔듯, 우리도 때로는 불편하고 거칠게 느껴지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 안에 있다. 세상의 조건들은 그 갈증을 감출 수는 있어도 채워주지는 못한다.

📖 다윗의 갈망

시편 63편 1절에서 다윗은 광야에서 이렇게 부르짖는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이 고백은 단순한 경건의 표현이 아니다. 다윗은 도망자의 삶을 살며 유다 광야에 있었다. 바위와 흙먼지만 가득한 곳에서 그는 육체의 갈증뿐 아니라 영혼 깊은 갈망을 경험했다. 하나님을 잃는 것이 곧 생명을 잃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갈망하며 몸부림쳤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자 생명의 유일한 샘이었다. 광야의 갈증은 오히려 그의 영혼을 더 깊이 하나님께로 이끌었고, 진정한 생명의 물줄기를 향한 목마름을 일깨웠다.

불편하고 힘든 자리라도, 생명의 물을 얻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편안한 나무 그늘에 머물기보다, 영혼을 살리는 갈망을 품고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늘도 내 영혼의 목마름을 솔직히 바라보고, 생명수 되신 주님을 간절히 찾는 하루가 되자.

🌿 묵상 적용

나는 내 삶에서 겉모습이 아닌 영혼의 상태를 얼마나 민감하게 살피고 있는가?

최근 내 마음의 갈증을 진정으로 해갈시켜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생명수를 얻기 위해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결단한 경험이 있는가?

🌟 마지막 묵상 문장

"울창한 숲 한가운데 있어도, 생명수 없이는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