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에 부러진 소나무, 바람을 안고 선 대나무
서울 도봉산 선인봉 박쥐길 테라스에는 하나의 전설 같은 소나무가 있었다. 거친 암벽을 오르는 이들이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쉼터, 고요히 그늘을 드리워주던 생명의 상징이었다. 박쥐길을 오르는 수많은 손과 발을 지나 2피치, 박쥐날개를 넘으면 만날 수 있던 그 나무. 멀리서 바라봐도 선인봉의 얼굴 한가운데를 지키던 존재. 1931년 영국 알파인 저널의 흑백 사진에도 그 모습이 담겨 있었던 나무.
그러나 지난 4월 19일 토요일, 초속 20m/s가 넘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오후, 그 오랜 친구는 뿌리째 뽑혀 꺾이고 말았다. 100년을 버텨온 생명, 한순간 바람에 무너졌다. 떨어진 낙석만 5.7톤. 석굴암의 종각 지붕이 깨졌고, 탐방 안내판 두 개가 부러졌고, 박쥐길 주변 등반 루트도 통제되었다. 크고 튼튼했던 가지는, 그 강함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꺾였는지도 모른다.
그 소식을 접하고 내 마음 속에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태풍이 몰아쳐도 넘어지지 않는 식물, 휘청거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생명—바로 대나무다.
🎋 바람을 품는 식물, 대나무
대나무는 바람을 피하지 않는다. 바람을 뚫고 서 있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바람을 안는다. 흔들리고, 휘어지고, 잠시 땅 가까이 몸을 낮추더라도 다시 곧게 일어선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다. 비어 있기에, 부러지지 않는다. 강한 것이 아니라, 비워진 것이 강함을 만들어낸다.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구조. 이것이 바로 대나무가 폭풍을 이기는 방식이다.
✨ 자기 비움, 하늘의 법칙
이 지혜는 단지 식물의 생존 방식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에도, 우리 영혼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하늘의 법칙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채우라 말한다. 더 높은 위치, 더 많은 물질, 더 화려한 타이틀… 그러나 진정한 강함은 비움에서 시작된다.
속이 텅 빈 사람은 유연하다. 자신의 고집이나 감정에 갇히지 않고, 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않으며, 변화 앞에 흔들리지 않는다. 비움은 도망이 아니다. 오히려 성숙이다. 쉽게 분노하던 내가 침묵할 줄 아는 것, 고집을 꺾고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는 것, 더 가지기보다 내려놓는 것, 이것이 하늘의 방식이다.
자기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진리를 위해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비움은 곧,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를 마련해드리는 준비다.
🙏 예수님의 길, 비움의 길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을 입기 전, 하늘의 보좌 위에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7)라고 사도 바울은 증언한다. 이 말씀 속 '자기를 비워'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케노시스(kenosis)'다. 비움이라는 이 단어는 신학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인간이 되셨고, 인간으로서 가장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가셨다. 겸손의 절정, 십자가. 그 비움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고, 포기가 아니라 충만한 사랑이었다.예수님이 자신을 비우셨기에, 하나님의 뜻이 그분을 통해 온전히 드러날 수 있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면, 이 '비움의 길'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가 비워야 할 것은 죄만이 아니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존심, 내가 옳다고 우기는 주장, 기대에 가득 찬 자기 중심적 시선들이다. 예수님의 비움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열었고, 낮아짐을 통해 높아지심의 길을 여셨다. 우리도 그 길을 따르자. 비움은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는 힘이다.
🌌 오늘, 무엇을 비울 것인가
혹시 나는 너무 많이 채우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내 생각, 내 방식, 내 감정, 억울함, 두려움, 비교의식, 자존심, 기대, 쓴 뿌리, 이 모든 것을 다 안고 가려다 보니 삶이 무겁고,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오늘, 속을 비워야겠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채우신다. 마음이 비어야 은혜가 들어온다. 자아가 내려갈 때, 주의 평안이 올라온다. 속이 빈 대나무처럼, 비움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강함이다.
🌾 묵상 적용
내 마음 안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을까?
비움이 필요한 영역은 어디일까?
하나님께 비워 드릴 때, 어떤 은혜가 채워질까?
🌱 마무리 묵상 문장
비워야 산다. 꺾이지 않으려면 내려놓아야 한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텅 빈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체 얼굴을 가리개로 가린 여자를 보며 느낀 묵상글 (0) | 2025.04.27 |
---|---|
'정지 신호를 넘어 달리는 소방차'에 대한 묵상글 (0) | 2025.04.26 |
'두 번이나 놓친 미용실 예약' 통해서 얻는 묵상글 (0) | 2025.04.26 |
'저녁에 마신 말차 한 잔의 결과'에 대한 묵상글 (4) | 2025.04.26 |
좌회전 전용 차선에 멈춘 차에 대한 묵상글 (0) | 2025.04.25 |